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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학습관에 관한 이야기

빌리지인 2024. 9. 23.

화천학습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포탈에 '학습관'을 검색하면 '평생학습관' 결과만 보입니다. 청소년들의 입시를 위한 학습관에 대한 정보는 '화천학습관'이 유일합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화천학습관'에 대한 내용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화천학습관 탄생 배경

시골 학교의 공통적인 고민은 아이들의 진학 문제일 것입니다. 농촌 학생들이 아무리 학교 교육에 충실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여건이나 기반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시에 비해 사설 학원이라든지, 교육문화센터 등이 없거나 빈약한 것이 시골입니다.

이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화천군수인 최문순 씨입니다.

70년대에 시골에서 고등학교에 다닌 사람은 부유층에 속했습니다. 최 군수 부모는 무리하게 논밭을 팔아 그를 중학교에 진학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가난 때문에 수업료를 제때 낼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수업료 낼 때까지 수업 종료 후 1학년부터 3학년 교실 청소를 다 하고 집에 가거라"

어느 날 담임선생이 그를 교단에 세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날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이런 선생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청소를 다 끝냈더니 밤 8시가 좀 넘더랍니다. 아이들은 4시쯤 모두 귀가를 했는데, 혼자 남아 청소를 했던 것입니다.

터덜터덜 20여 리 길을 걸어 귀가하던 중,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강 한가운데 들어와 있더랍니다. 무의식적으로 이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 생의 마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젖은 몸으로 강 밖의 돌 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눈물은 탈출구라도 있을 때 나는 것입니다.

"그래, 어떻게든 고등학교만이라도 마치자. 그리고 공무원이 돼서 나 같은 아이들이 없도록 하자!"

최문순 씨는 화천군청 과장으로 재직할 때, 학습관 제도를 구상했습니다. 말단직원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시책도 군정에 반영하기 힘들었을 때입니다.

최문순 과장의 이 제도가 언론에 보도되자,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은 학교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당시의 군수라는 사람도 시큰둥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최문순 씨의 구상은 이랬습니다.

'총명한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도시만 못하겠지만, 아이들이 학교 수업 종료 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보자. 대도시의 이름 있는 학원가 선생들을 데려다, 주요 과목별로 배치하면 될 것이다. 인건비나 시설 유지비는 국비를 받아 낼 수 있다면, 학부모들에게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구상이 뜻대로 될 리 없었습니다. 국비 확보부터 막혔습니다. 중앙부처 직원들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전례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라는 핑계로 문전박대했습니다.

최 과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겹도록 중앙부처를 찾았습니다. 집에서 짠 참기름 한 병들고 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사비로 밥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이런 행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중앙부처 직원들의 화천 캠핑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이면 송이 체험도 시켜 주었습니다.

그 결과 학습관을 지을 정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드디어 화천 학습관 문을 열었습니다.

화천학습관 외부 전경
화천학습관 외부 전경

화천 학습관 운영 시스템

학습관 입교 자격은 모든 학생에게 주어집니다. 화천에는 중학교 3개교와 고등학교 4개교가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고1, 고2, 고3 학생들은 매년 6월과 12월에 학습관 입교 자격시험을 봅니다. 정원이 60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습관 입교를 위해 경쟁적으로 공부를 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순탄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반발이었습니다.

"우리도 페이만 해결해 준다면, 얼마든지 학습관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데, 학원가 선생들을 데려오는 게 말이 되는가!"

최군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학교는 아이들 학업과 인성교육 등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학습관은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목적이다. 교육방법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학습관 입교가 결정된 아이들은 방과 후 귀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관으로 옵니다. 보통 밤 11시까지 수업이 이어지고, 자습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새벽 2시까지 자습실을 개방합니다.

학습관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갈 수 없습니다. 2인 1실 기숙사를 이용해야 합니다. 집에 가는 날은 매주 일요일 정도입니다. 아이들 학습패턴 및 분위기를 유지시키기 위함입니다.

성과가 나타나다

학습관을 문을 연지 2년 정도 지나자,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엔 시골 학교에서 4년제 대학에 들어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학습관 출신 고3 학생 전원이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성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 소재 대학 진학은 물론 SKY라 불리는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학습관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도 덩달아 신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다 발전적인 학습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습니다.

"이 정도의 교육을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면서 받는다면 학부모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어느 학습관 강사의 말처럼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학원에서 이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면 수백만 원은 들 것입니다. 그러나 학습관 입교생들이 내야 하는 돈은 고작 식비나 간식비 정도입니다. 모든 것은 화천군에서 부담합니다.

고3 학생이 있는 가정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 TV도 볼 수 없습니다. 집안에서 숨죽이고 1년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이의 컨디션을 위해 음식이나 간식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학습관에 보낸 학부모는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습니다. 가끔 아이들 건강과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됩니다.

사실 그것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학습관의 식단은 매일 영양사의 지도 아래 다양하고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과목에 대한 균형 학습이나 진학 상담 또한 학습관 교무부장 선생님을 통해 해결됩니다.

화천 학습관의 또 다른 성과

화천학습관 출신 김민주 씨는 첫월급 전부를 화천군에 기탁했습니다-사진 화천군청 제공
화천학습관 출신 김민주 씨는 첫월급 전부를 화천군에 기탁했습니다-사진 화천군청 제공

우리나라 시(市)나 군(郡)의 경우 지방자립도가 열악합니다. 자주재원으로 공무원들 급여 해결도 못 하는 지자체가 꽤 많습니다.

지자체를 운영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지방세나 세외수입으로 운영할 수 없기에 중앙의 교부세는 필수입니다.

중앙정부에서 교부세를 산정하는 기준 중 중요시하는 것이 인구수입니다. 인구수에 따라 교부세 규모가 달라집니다.

교부세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위에 설명한 것처럼 화천학습관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면서 외지에서 전입해 오는 주민들이 늘어났습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학습관 효과 중 인구 유입에 따른 교부세 증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또 다른 성과는 화천학습관 출신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하게 되면 첫 월급을 화천 인재 육성 장학금으로 기탁합니다.

최문순 화천군수의 시책 중 '지역인재 육성'이란 것이 있습니다. 화천군에서 교육 혜택을 입을 아이들이 후에, 지역을 위한 일꾼으로 성장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학습관 연장선상에 위치합니다.

해마다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화천학습관 견학을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습관을 설립했다거나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간절함과 지역 아이들을 위한 교육철학입니다. 화천 학습관은 최문순 군수가 어렸을 적 경험한 가난을 철학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운영시스템이나 방법만 파악해 간다고 쉽게 이룰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상과 같이 개괄적으로 화천학습관에 관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학습관 아이들의 생활 이야기 등에 대해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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